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밤에도 강물 잔잔히 굽어 흐르고
.
이시영 '시월' 중에서
사랑의 계절 가을은 가을에 관한 시 모음으로 따뜻한 온기를..
짧은 가을 시는 마음의 감성을 일깨운다.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시월
- 이시영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밤에도 강물 잔잔히 굽어 흐르고
별들은 머나먼 성하(星河)로 가 반짝인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
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십일월
-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더좋은날의 치유테라피
몸과 마음의 치유! 그이상!
나태주 시인의 짧은 가을 감성 시와 함께..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낙엽이 지는 가을에는 가을 시 모음을 낙엽에 담아 그대 마음에 보낸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잇었다
그런 어느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깊은 가슴으로 섬기고 또 섬기며
거룩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습니다
가을처럼 아름답고 싶습니다
- 이채
가을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의 등불 하나 켜 두고 싶습니다
가을에 가는 사람이있다면
가장 진실한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엔
그리움이라 이름하는 것들을
깊은 가슴으로 섬기고 또 섬기며
거룩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습니다
오고 가는 인연의 옷깃이
쓸쓸한 바람으로 불어와
가을이 올 때마다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세월
꽃으로 만나
낙엽으로 헤어지는
이 가을을 걷노라면
경건한 그 빛깔로 나도 물들고 싶습니다
그대여!
잘 익으면 이렇듯 아름다운 것이
어디 가을 뿐이겠습니까
그대와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그대와 나의 삶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가을의 창문을 열면
-이외수
어디쯤 오고 있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사람 하나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사태질 때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로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에 지껄이는 소기라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월
- 오세영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시월에 생각나는 사람
- 최원정
풋감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머물면
가지 위, 고추잠자리
댕강댕강 외줄타기 시작하고
햇살 앉은 벚나무 잎사귀
노을 빛으로 가을이 익어갈 때
그리운 사람,
그 이름조차도 차마
소리내어 불러볼 수 없는
적막의 고요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오지 못할
그 사람 생각을 하면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시월
- 로버트 프로스트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너의 잎새들은 곱게 단풍이 들어 곧 떨어질 듯하구나
만일 내일의 바람이 매섭다면
너의 잎새는 모두 떨어지고 말겠지
까마귀들이 숲에서 울고
내일이면 무리 지어 날아가겠지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오늘은 천천히 전개하여라
하루가 덜 짧아 보이도록 하라
속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속여 보아라
새벽에 한 잎
정오에 한 잎씩 떨어뜨려라
한 잎은 이 나무, 한 잎은 저 나무에서
자욱한 안개로 해돋이를 늦추고
이 땅을 자줏빛으로 흘리게 하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미 서리에 말라버린
포도나무 잎새를 위해서라도
주렁주렁한 포도송이 상하지 않게
담을 따라 열린 포도송이를 위해서라도
국화꽃 같은 구름
국화향 가득한 바람이 불고
10월은
- 박현자
시월은
내 고향이다
문을 열면
황토빛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시는
어머니
하늘엔
국화꽃 같은 구름
국화향 가득한 바람이 불고
시월은
내 그리움이다
시린 햇살 닮은 모습으로
먼 곳의 기차를 탄 얼굴
마음밭을 서성이다
생각의 갈피마다 안주하는
시월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는
내 고향이다.
가을에 관한 시, 감성 시, 짧은 가을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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