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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숲 Poem/좋은시

가을에는 좋은 시 한편

by 바람속으로 2020. 10. 14.

▶박인환 시인의 1955년 대표작 '목마와 숙녀'

▶지상의 공간을 떠난 목마와 숙녀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희미한 의식의 잔해를 남기고 떠난다.

▶가을의 길 위에서 만나는 좋은 시 한편


가을 하늘은 그대 마음 만큼이나 드높아라~

멍이 든 파아란 가을 하늘은 햇살에 부서져 내린다.

조각처럼 부서진 하늘은 내 마음에 눈 내리듯  좋은 한편!

 

삶에 대한 불안과 시대적 슬픔이 묻어있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좋은 시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삶에 대한 동정을 통하여

사랑과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시 한 편, 허무한 죽음을 통해 들여다보는 우리들 삶과 죽음에 대한 초상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부릅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가을에 보기 좋은 시 한편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는 도시와 문명에 대한 모더니즘적 추구의 시대상황적인 회의와 절망으로 밝은면 보다는 우울함에 대한 어두운 면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가을 하늘 낙엽 따라 흘려보내는 가슴 아린 한 편의 가을 시를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