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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숲 Poem/계절 & 인생

흐르는 강물처럼 [사는일] 나태주

by 바람속으로 2023. 9. 13.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사는 일, 나태주 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사는일  -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인생의 여정에는 곧은 길도 있지만, 굽은 길도 있으리라. 굽은 길이 마냥 힘든 고통스러운 길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소박한 행복이 깃들어 있다.

인생 별거없다. 괴롭고 힘든 고통의 시간도  지나고 보면 아무일도 아닌, 그저 그냥 내 삶의 일부분 이었음을..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고 흐르다 보면 머물때가 있으리라.

 

- 바람이 머무는 숲